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올리버 비어호프 (문단 편집) == 플레이 스타일 == [youtube(vnoWgYjcHlw)] 발기술을 비롯한 기본기는 떨어져서 항상 정통 센터 포워드의 역할에 치중했다. 현역 당시 프로필을 보면 알겠지만 큰 키와 탁월한 피지컬을 바탕으로 한 타겟형 스트라이커 플레이에 능했다. 그의 최대 장기는 바로 '''헤더'''. [[UEFA 유로 1996|유로 1996]] 체코전에서의 골도 그렇고 [[1998 FIFA 월드컵 프랑스|1998 프랑스 월드컵]] 16강전에서 터뜨린 입이 쩍 벌어지는 역전 결승골 등 선수 생활 내내 대부분의 골을 헤더로 만들어냈다. 스피드가 빠른 것도 아니고 발재간이 좋은 것도 아니었던 그가 위대한 스트라이커로 자리매김한 것은 순전히 헤더 능력덕분이다.[* 역대 헤더 통산 골수 2위다. 1위는 [[크리스티아누 호날두]].] 수비수들 사이에서 튀어나와, 내지르는 헤더 능력은 일품이었다. 특히 공중전 장악 능력은 발군이라서, 독일에서 이에 버금갈 선수는 그의 후계자라고 할 수 있는 [[미로슬라프 클로제]]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찾기 어려웠다. 하지만 가장 치명적인 결함은 오직 '''헤더 중심의 포스트 플레이'''에만 치중되었다는 점이었다. 비어호프가 주축이 된 독일 대표팀 특유의 딱딱하고 투박한 볼키핑과 공중전, 느린 주력 및 취약한 패싱 능력은 상대 팀의 수비를 아주 쉽게 만들어 줬고, 그래서 독일은 [[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|1990 이탈리아 월드컵]]에서 우승한 이후 [[1998 FIFA 월드컵 프랑스|1998 프랑스 월드컵]]을 망쳤다. 특히 리옹 참사라고 불리는 [[1998 FIFA 월드컵 프랑스/8강|1998 프랑스 월드컵 8강전]]에서 독일이 처녀출전한 [[크로아티아 축구 국가대표팀|크로아티아]]에 0-3으로 학살당할 때 비어호프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.[* 단, 리옹 참사 당시 비어호프가 부진했던 것은 사실이지만, 전적으로 비어호프에게 책임이 있다고 볼 수는 없다. 애초에 전반전에 뵈른스가 백태클로 퇴장당하면서 독일이 수적 열세에 놓였고, 그 결과 전반에 한 골, 후반에 독일 선수들의 체력이 방전되면서 막판에 연이어 두 골을 먹고 3-0으로 참패했기 때문. 게다가 하이라이트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야르니의 선제골과 블라오비치의 두번째 골은 도무지 어떻게 손을 쓸 수가 없는 기가 막히게 골문 구석으로 향하는 중거리 슛이었다.] [[2002 FIFA 월드컵 한국·일본|2002 한일 월드컵]]에서 독일의 준우승에 기여했으나, 그것은 어디까지나 [[사우디아라비아 축구 국가대표팀|사우디아라비아]] - [[아일랜드 축구 국가대표팀|아일랜드]] - [[카메룬 축구 국가대표팀|카메룬]] - [[파라과이 축구 국가대표팀|파라과이]] - [[미국 축구 국가대표팀|미국]] - [[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|대한민국]]으로 이어지는 꿀대진 덕분에 가능했던 것이고 그 꿀대진에서조차 [[미하엘 발락]]과 [[올리버 칸]]이 없었으면 16강 통과도 어려울 지경이었다. 당시 독일은 발락과 칸 2명에게 상당히 의지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는데, 발락이 공격도 이끌고 조율도 책임지는 등 팀의 중심이 되며, 팀이 무너질 때 쯤이면 칸이 믿기 어려운 슈퍼 세이브로 번번이 팀을 구원했다.[* 클로제는 조별리그에서만 폭발했을 뿐, 16강부터는 완전히 침묵했다.] 게다가 이 시점에서 이미 만 34세의 노장이었던 비어호프는 클로제와 [[올리버 뇌빌]]에게 주전 자리를 내주고 플랜 B 정도로만 기용되었다. 비어호프는 전형적인 고전 독일 축구 세대의 마지막 선수이며, [[UEFA 유로 2000|유로 2000]]에서의 대실패 이후 독일이 본격적으로 [[순혈주의]]를 포기하고 외국계 선수들을 등용하면서 전차군단은 비로소 부활할 수 있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